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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Story17

나는 생각한다, 고로 당신 탓이다. 내 시선은 조용히 해산물 볶음밥 위에 머물러 있다.탱탱한 새우살의 탄력을 느껴보기도 전,앞에 앉은 이의 깊은 한숨이 식탁을 울린다.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본다.묻지는 않지만, 묻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그렇게 조용한 무대가 마련된다.그리고 그는, 마치 독백하듯 말하기 시작한다.와이프에 대한 섭섭함.자신은 희생했다고 느끼는데,상대는 그러지 않는다는 생각. 가끔은 일을 그만두고뭔가를 되갚아주고 싶다는 충동도 있지만,그럴 순 없다고 말한다.사회적 책임이 그를 묶고 있다고.나는 그 말을 들으며,그의 얼굴 너머로 어딘가 어린 표정이 겹쳐진다.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나는 특별하다는 걸 느끼고 싶어." 특별함을 통해 상처받은 자존을 복구하려는 아이.그런 아이는,자신보다 특별해 보이는 대상을 향해.. 2025. 6. 20.
나의 자세가 좋지 않은 것은 나의 마음이 바르지 않아서일까? 한 손에 쥔 컵 안에는샐러리, 당근, 블루베리, 호두…몸에 좋다는 것만 골라 갈아 넣은 주스가 들어 있다.건강한 맛만큼이나,이걸 꾸준히 챙겨 마시는 내가조금은 기특하게 느껴진다.‘나는 나를 돌보고 있다’는 그 작은 성취감. 컵을 입에 대며, 자연스레 시선은 모니터로 향한다.‘거북목 교정’, ‘라운드 숄더 개선’자세 영상들을 스크롤하다가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편다. 반사적으로.며칠 전, 헬스장에서 찍은 사진이 생각난다.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은,한때는 곧았을 ‘나’가 아니었다.‘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충격은 곧 검색으로 이어지고,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수많은 방법들을 밤새 찾아 헤맸다. 어떻게 같은 부위를 다루는데,이렇게나 다양한 해법이 있을까?하지만 별로 놀랍지는 않다.사람도 다르고, 아픔도 다르니.. 2025. 6. 19.
모임에서 늘 들러리가 되는데 또 나가는 나의 심리 (ft. 리얼리티 트랜서핑) 띠링— 알림이 울린다.뒤척이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메시지를 확인한다.일요일 오후 2시, 스터디 카페.나는 깊은 한숨을 쉰다.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자기 말만 옳다는 듯,우월감으로 포장된 지적 싸움.하이에나처럼 약점을 물어뜯을 기회를 노린다.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늘 좋은 먹잇감이었다.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우월감을 제공하는 들러리.나는, 그 앞에서 연약한 가젤이 된다.도망치는 것이 특기인 가젤.하지만, 그 작은 스터디카페엔 도망칠 공간조차 없다.멀어지는 문틈만이 유일한 탈출구. “그렇게 싫으면 안 가면 되잖아.” 귓가에 스치는 속삭임.하지만 나는 또 변명을 뱉는다.“안 간다고 말하는 게 더 싫어.”나는, 그들이 내 뒤에서 또 다른 사냥을 시작할까 두려웠다.도망치는 것보다, 붙잡혀 있는 쪽이 오.. 2025. 6. 18.
나를 감옥에 가둔건 직장상사가 아니라 내 죄책감이었다. 일요일 밤 9시.주말의 끝자락이 아쉬움처럼 흘러가고,월요일이 느릿하게 다가오는 시간.무심코 고개를 돌려 휴대폰을 바라본다.그리고, 어김없이 울리는 진동.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초록색 버튼을 옆으로 민다. 익숙하면서도 이제는 멀게 느껴지는 목소리.가장 가까웠던 사람의, 가장 아득한 말씨.“밥은 잘 챙겨 먹니?”그 말 뒤에 따라오는 건,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걱정들.사랑인 줄은 안다.하지만, 때로 그것은모두가 서로를 감시하는 파놉티콘 같다.좋은 의도라는 이름 아래,선한 통제가 조용히 들어와내 숨을 조인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그 감정 또한 나의 것이다.창밖에 빨간불에 멈춰 선 차들이 보인다.규칙이 있기에,우리는 충돌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그분들의 은혜를 잊은 건 아니다.. 2025. 6. 17.
미래에서 유행한 놀이, '니체 혼자 레벨업'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반짝이는 커서 앞에서 한참을 머뭇이다가,마침내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타임루프...’방금 본 영화에서 다룬 주제다.그것이 실제로 가능할까?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우리 곁엔 미래에서 온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그렇다면 그들은 왜 왔을까?어떤 걸 바꾸러? 아니면… 지켜보러?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AI의 응답 속도도 점점 느려질 무렵,문득 내 안에서 질문이 하나 더 떠오른다.“혹시… 내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면?”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나온다.나는 아직 오늘 점심 메뉴도 못 정했는데.만약 미래에서 왔다면,로또 번호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만약 돌아갈 수 없는 미래를 막기 위해일부러 기억을 지운 채 왔다면?그래서 아무것도.. 2025. 6. 16.
애니 오타쿠와 철학자의 경계 그 언저리에서 영화 목록을 스크롤하던 중,'Animation'이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온다.클릭하지 말까…뭔가 눌러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커다란 눈망울, 과장된 감정선,그런 걸 본다는 건 허용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호기심은 그런 이질감을 조용히 이긴다.화려한 그림체와 액션 속에 숨은 질문."AI에게도 마음이 있을까?"그럼, 인간의 마음은 도대체 뭐가 다를까?진부하다고 치부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간다.현실이 아니기에 상상할 수 있었고,상상이었기에 진심으로 다가왔다. 클라이맥스.스크린 속 AI가 고민한다."나는 누구지?"그리고 나는, 그 고민에 공감하고 있었다.볼을 타고 스치는 싸늘한 감각.어딘가에서 소름이 올라온다. … 도대체, 왜? 그녀는 만들어진 존재다.나와는 전혀 다르다.그런데,.. 2025. 6. 16.